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나라 또는 국가에 대한 가치관이나 태도인 우리나라의 국가관이 어떻게 변천(變遷)해 왔는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가관은 광복 이전에는 전통적으로 ‘나라’의 개념이었고, 광복 이후에 비로소 근대 국가로서의 국가관이 확립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나라 개념이 광복과 동시에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나라’와 ‘국가’의 개념은 차이가 있다. 나라의 개념은 말과 문화 공동체라는 개념이 강하다. 국가는 말과 문화가 달라도 같은 영토 안에서 동일한 국가 주권 아래에서 사는 국민들을 의미한다. 예컨대, 미국 같은 나라는 다양한 민족의 문화들이 혼재하는 연방 국가이다.
또한 LA의 한인촌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다.
근대 국가 개념은 대개 서양에서 발전된 개념이고 동양권에서는 나라 개념이 더 강하며 여기에 국가 개념이 더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에서는 나라와 임금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매우 짙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나타나는 국(國)이라는 개념은 근대 국가에서의 국가라는 뜻이 아니라 나라 개념에 훨씬 더 가까운 개념이다. 또한 임금은 나라님이었다.
나라 개념이 형성되는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장기간에 걸쳐서 사용된 공통된 언어와 문화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단군이 1,038년을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단군이라는 어떤 개인이 천 년 이상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를 이어 단군이라는 임금들이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나라에 대한 사랑과 섬김은 매우 강했다. 이는 고대사회에서부터 내려온 뿌리가 깊은 역사이다. 대한민국의 나라에 대한 가치관은 주로 조상들의 얼인 단군의 홍익 인간사상이 있었고 이어 불교나 유교 등 종교문화와의 관련성 속에서 변화되어 왔다.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국시대는 불교시대였다. 고려시대 역시 불교시대였다. 그 이후에도 불교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불교가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던 시대라는 의미이다. 특히 신라에 들어온 불교는 나라사랑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신라 문무왕(해중릉,海中陵)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호국신이 되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면 짐승으로 태어나도 좋다고 말하였다.
신라 법흥왕은 불교를 최초로 허락하였는데, 이는 국민생활과 불교정신을 연결시켜서 부강하고 행복한 백성들의 생활을 기원하는 마음이 기초가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신라인들은 자기 나라를 불교나라, 불국토로 여겼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부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불교나라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신라인들은 불교 종주국이라는 인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 나라를 새로운 불교 종주국으로 여기면서 나라에 대한 긍지를 세워갔다. 즉, 마음을 인도 쪽으로 빼앗기지 않고, 불교 사상을 자기 나라의 정신문화로서 주체적으로 흡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라인들은 깨끗한 나라, 정토(淨土)의식이 강했다. 즉, 보살들이 사는 나라 ‘신라즉불정토사상(新羅卽佛淨土思想)’이다. 여기서 신라인들의 강한 애국과 호국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신라인들은 부처님과 성인(聖人)들이 항상 머무는 진신상주(眞身常住)의 나라이므로 신라는 고귀(高貴)하고 축복받은 땅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강원도 낙산사에서 의상과 원효가 관음보살의 거주처와 현신(現身)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고,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거주한 곳이고 거기서 자장이 문수보살을 보았다는 기록도 있다. 효소왕 때 망덕사 낙성시 석가모니 진신불(眞身佛)이 나타나 공양을 받고 하늘로 승천한 기록이 있고, 원효가 신라의 땅 밑에서 극락을 보았다는 기록 등으로 볼 때 이해할 수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을 것이며 발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