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대운 대기자, 신상진 성남시장의 탈아봉공(脫我奉公)외침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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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대운 대기자, 신상진 성남시장의 탈아봉공(脫我奉公)외침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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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9.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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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벗어 버리고 공적인 것에 봉사’해야 한다
김대운 대기자

 

신상진 성남시장(城南市長)이 현 집권여당(執權與黨)의 중앙정치(中央政治) 현상(現像) 운영상태(運營狀態)을 보면서 ‘나를 벗어 버리고 공적인 것에 봉사’해야 한다는 탈아봉공(脫我奉公)의 정신이 아쉽다는 주문(注文)을했다.

선량(選良)으로서 중앙정치무대(中央政治舞臺)를 섭렵(涉獵)해 온 지방정부(地方政府) 수장(首長)으로서 시의적절(時宜適切)한 표현(表現)이기도 하다.

선출직(選出職) 공무담임자(公務擔任者)들의 일부(一部) 행태(行態)는 나에 대한 집착(我執)과 진영(陣營) 논리(論理)에 함몰(陷沒)된 그들만의 횡행(橫行)이 국민들이 바라보기에는 봉사(奉仕)를 봉사(奉事:웃 사람을 받들어 섬김)로 착각하는 세태(世態)로 변질(變質)되어 가고 있음을 부인(否認)하기 어려운 시대다.

국가 혼(魂)이 사라지고 ‘나 아니면 안 된다’ 는 자만(自慢)과 교만(驕慢)이 상호(相互) 상승(上昇)효과를 나타내며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내세우며 보이기 위한 현시욕(顯示慾)이 범람(氾濫)하고 있다.

염불보다 잿밥에 앞서 물욕(物慾)성취(成就)에 급급(汲汲)한 인간상(人間像)으로 간혹 매도(罵倒)되기도 한다.

큰 정치(政治)무대(舞臺)나 작은 정치 (政治) 무대(舞臺)나 할 것없이 무대에 오르기 전 모두가 머슴론(論)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무대에 올라서면 위민봉사(爲民奉仕)의 정신(情神)은 뒷전인 채 자신(自身)들의 욕심(慾心)을 채우기 위해 결국 과유불급(過猶不及)의 화(禍)를 자초(自招)하는 모습도 부족해  양두구육(羊頭狗肉)과 표리부동(表裏不同)에 빙의(憑依)된 여린 군상(群像)들 모양새로 도처(到處)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씁쓸함을 보여주곤 한다.

유권자(有權者)들의 의사(意思)에 반(反)한 탓에 수사기관(搜査機關)에 의해 외과수술(外科手術)을 기다리는 처지(處地)로 전락(轉落)해 의원(議員) 상징(象徵)인 뺏지와 자리마저 보전(保全)할 수 없고 상황에 따라서는 영어(囹圄)의 몸으로 떠밀리는 경각(頃刻)에 달려있는 군상(群像)들의 처량(凄涼)한 모습도 비쳐진다.

신상진 시장이 밝힌 탈아봉공(脫我奉公) 철학이 온누리의 어둠을 걷어내는 여명(黎明)의 감흥(感興)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반가운 광경이다.

중앙정치무대(中央政治舞臺)에 대한 외침과 이에 공감(共感)하는 울림을 주는 것과 반대(反對)로 지방정부(地方政府)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출직공무담임자(選出職公務擔任者. 市議員 等)에 의해 벌어진 권력투쟁(權力鬪爭)의 일탈(逸脫)된 이들의 행태(行態)가 대비(對比)되고 있어 이를 바라보는 유권자((有權者)들의 심기(心氣)가 여간 불편(不便)할 정도(程度)가 아니다.

해당(該當) 지역(地域)의 실추(失墜)된 주민(住民)들의 명예(名譽)와 자긍심(自矜心), 위상(位相)회복(回復)에 심혈(心血)을 기울여 달라는 염원(念願)으로 등에 업고 지방자치단체장(地方自治團體長)으로 선출(選出)됐음에도 협조(協助)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라고 과반(過半)이상(以上)의 의석수(議席數)로 다수당(多數黨)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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