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그림자에 대하여 체계적인 이론을 가지고 설명한 사람은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다. 마음의 그림자란 간단히 말해서 마음속에 있는 동물적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들에게는 도덕관념이 없으며 주된 관심은 생존과 번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원시시대에는 동물 수준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되어 진다. 이후 시대가 발전하면서 서로 모여 사는 사회가 생기고 변화되면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도덕이 생겼고 자기 자신만 살아보겠다는 동물적 속성은 악(惡)으로 취급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서구에서는 보통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초인(超人)적 형상을 띄며 일반적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제한을 극복한 이상적 인간(理想的人間)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았으므로 동물적 본성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성행(盛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성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게 된다. 이를 마음의 그림자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밖으로 나타나면 분노하거나 지나치면 살인도 하고 집단적 광기로 변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구에서 인류는 인간 스스로를 지나치게 긍정적⸱낙관적(樂觀的)으로 생각한 나머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여기서 독일의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초인 개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인류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지구촌에서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간들끼리의 살육(殺戮)을 경험하면서 마음속 그림자에 대하여 깊이 숙고(熟考)하기 시작하였다. 성서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field)로 데리고 나가 돌로 쳐서 죽인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 심층(深層)에는 분노와 살인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동서양 어디에서든지 발견될 수 있다.
동양 사회에서는 서구에 비해 일찍부터 마음속의 그림자에 대한 인식이 있었으나 서구에서는 잠시나마 착각이라 할 수 있다지만 마음의 그림자를 애써 부정(否定)하면서 스스로가 정의(正義)의 이름으로 다른 존재들의 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자신 안의 그림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 있는 서구인들 사이에서 동양의 빛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방식에서 개인주의가 뛰어난 서구보다는 비교적 집단주의가 아직 강하게 남아있는 동양의 나라들이 더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등 위기 상황에서의 단결력과 집단적 조절에서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보다 동양 사회가 더 유리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가 되었다.
동양 사회에서 개인들의 마음의 그림자는 억압(抑壓)되고 은폐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서구에서는 마음의 그림자를 외부 세계에 공격적으로 투사(投射)하고 발산(發散)시켜 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동양은 서구의 진취적 발전주의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후진국이라는 말을 들어왔으나 향후에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소박함의 지혜가 더 돋보이는 시대에 도래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서구의 지나친 속도전과 발전 지상주의가 한 풀 꺾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그리워하는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증가하는 것이다. 동양 가운데서도 한국은 그림자에 대한 경험이 남다르게 많다고 볼 수 있다. 선조들은 북방 민족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고,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를 경험하고, 이도 모자라 남북의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 경험은 물론 동양과 서양의 기운이 동시에 모이는 한반도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중국과 미국 등 강대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지역으로서의 집단적 그림자를 경험하였으나 이제는 그러한 그림자 경험이 오히려 세계를 치유(治癒)하는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말세 경험을 너무 자주 겪었기 때문에 그림자의 한(恨)이 많은 것이다. 이로 인한 한국 사람의 문제해결 능력이 오히려 세계인들 마음의 면역력(免疫力)을 키워주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도래(到來)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마음(心)을 다스리는 것이 성(城)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는 말처럼 미래는 마음속 쓴 뿌리 그림자인 우주의 악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 빛의 삶을 사는 지름길이며 첩경(捷徑)이다. 어두운 욕망의 방향을 자리바꿈(transposition)하는 새로운 마음이 중요하다.